여행 | 2009/07/14 23:57

하늘바라기 산장에서 주문한 열무김치가 아주 시큼하게 시어서 엄마한테 묘법을 물은 후 지금 멸치를 몇마리 우려낸 국물에 지지고 있다. 오랜만에 가스렌지 앞에서 불과 마주 본다. 거의 외식으로 한두달을 살아온 것 같고, 근래 아주 길게 요리에 대한 권태가 찾아왔더랬다. 냄비가 한소끔씩 끓어 소리를 낼 때마다 가만히 불을 작게 줄여준다. 동그랑땡과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몇가지 내일 도시락으로 싸 놓았다.

이번 여행은 아직도 마음이 철렁할만큼 참 길고 중요하고 조심스러웠다.
일이 있어 하루밤은 어느 호텔에 혼자 묵게 되었는데, 그 호텔은 내가 옛날 그곳에 살면서 너무 가보고싶던 곳이었다. 몇 년이 지나 로비 외벽은 페인트가 빛바랬지만 미국 어느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환영한다는 플랜카드가 붙어있던 그 호텔, 컨서지 아저씨가 친절했던 호텔, 548호, 복도 맨 끝. 너무나 무셔웠던 긴 복도. 늦잠을 자버려서 호텔에서 제일 좋아하는 호텔아침식사를 놓쳐버린 그 곳.
밤에는 너무나 심심해서 근처 산책을 떠났으나 그곳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도, 그 흔한 세븐일레븐도 없었다. 건너편 언덕길을 오르니 야간에도 공사장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 앞에 차려진 야시장. 5년 전 유학시절에나 먹던 1원짜리 오징어구이를 사먹고, 2원 50전짜리 완탕을 사먹고, 완탕엔 미원과 실란트로는 빼주세요. 그리고 혼자 다 먹을 수가 없어 수박을 반에 반쪽만 사고 그곳의 명물이라는 복숭아를 세 알 사서 돌아왔다.
야시장 한켠 작은 식탁에 쪼그리고 앉아 완탕을 호호불고 먹고 있자니 어떤 금시계를 찬 아저씨가 맞은편에 앉았다. 아저씨는 앉자마자 나온 소롱포를 한입 배어물더니 저리치웠다. 그러더니 나한테 맛이 없다고... 나쁜 사람같지는 않아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어 몇마디를 나누었는데 나보러 신장 사람이냐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아주 크게 웃었다. 살다살다 신장사람이냔 얘긴 또 처음. 그러더니 분명 서북사람이라고, 그러더니 혼자 나를 인촨 사람으로 결론지었다. 젊은 사람이 감각이 딸린다. 난 중국사람이냐는 얘기가 참 듣기 좋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지난 기억을 되찾으러 간 그 곳에서 현재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왔다. 정말 고독하기도 했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있었다. 한번도 마주대해보지 못한 얼굴, 중국이라는 큰 얼굴.
돌아오는 공항 대기실에서 탑승을 기다리다 가방 깊숙히 넣어온 복숭아가 생각이 나서 한알을 먹었다. 역시 복숭아는 거기 복숭아. 단물이 물씬 나오는 신선한 복숭아 한개.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믿음이란 가짜가 아닐텐데, 이젠 진짜 삶이고 하루하루 생활이고 현실이구나.

참 길고 긴 여행을 한 것 같다. 어쩌면 못 돌아올뻔한 여행. 내 길 다 그분 손에 달렸다. 한번에 내칠수도 있고 끝까지 나를 따라다녀주실 수도 있다. 조금 더 내 안에 있는 직관을 따라 용기를 내기로 했고, 어쩌면 앞으로 이 길이 더 길고 고독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맛보았다. 바라고 또 바라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만이 그 순간에 도달했을 때 희열을 맛볼 수 있다. 하루치의 평안을 계속해서 주시고 계심에 감사드린다.

2009/07/14 23:57 2009/07/1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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