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부러 더 먼저 고기굽기에 앞장서고 고무장갑도 없었지만 설겆이도 자진해서 했다. 추운밤을 잠깐 나와 강아지와 속삭이고 별들을 헤었고, 아침에도 잠깐 동네산책을 즐겼다. 가만히 아무 말도 없이 걸었고 그동안 걸어온 걸음도 조금 뉘우쳐보았다. 그런 일 거의 없는데 어제는 새벽 5시까지 갖은 힘을 쓰며 깨어있었고 사소하지만 즐거워지는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팬션을 정리하고 예배를 드리러 100년이 넘어 국가 유적으로 등록되어있는 강화 성공회 천주성당에 갔다. 백년이 넘은 건물에서 나무냄새가 났다. 창호지를 바른 문은 밖에서도 신부님의 목소리가 스며나올만큼 생소했고, 기와지붕 밑에 촘촘한 창문들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히터의 뜨거운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나는 약간 마음이 감성적이 되어 앞자리에 앉아계신 80이 넘어보이는 백발의 할아버님들을 보면서 눈물을 훔쳤고, 뒤에서 빌려준 성공회찬송가 장을 넘기다가 또 눈물을 삼켰고, 신부님의 말씀과 영성체를 하는 내내 기와지붕밑으로 앞다투어 들어오는 겨울햇빛에 많은 위로를 받으며 앉아있었다.
물러나는 것은 이렇게나 애절한 것이었다. 물러나는 것은 이렇게나 쓸쓸한 것이고 물러나는 것은 이렇게나 뒤를 돌아 눈물을 훔치는 외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길은 각자 각자이다. 나는 너와 끝까지 함께 갈 수 없으며, 너가 미워지는 시기조차도 계속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전자시계의 알람이 울린다. 오전에 팬션 식탁에 풀어져있는 내 전자시계의 매뉴얼을 연구하며 누군가가 테스트로 맞춰놓은 알람이었는데 그게 지금 울리고 있다.
오늘은 극장에 혼자 가지도 카페에 가서 책을 읽지도 좋아하는 글들을 주섬주섬 찾아보지도 사야할 가방을 고르러 백화점엘 가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있기로 한다. 지나온 시간들과 화해해야할 것들을 셈해보고 잠시지만 그것을 견디면서 이제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 흘러갈 것을 조용하게 기다리며 그렇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