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Pandemonium), 마츠모토 토시오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가 시작했다. 작년에는 류승완 감독의 추천작 한 편 본게 전부였는데 올 해는 여러 편을 챙겨볼 것이다. 오늘 처음으로 본 영화는 정성일이 추천한 마츠모토 토시오의 <수라>. 1971년 작이고 게다가 흑백에다 게다가 모르는 일본감독이라 (딱 스즈키세이준의 <살인의 낙인>을 대하던 때의 느낌으로) 낯선 이 영화가 별로였으나, 정성일이 추천한다는 이유로 예매하고 보았다.
정성일은 말하자면 '취향의 명단'이란 게 있다라고 말했다. 전함포템킨이나 동경이야기는 누구나 당연히 봐야하는 지성의 영화이고 이탈리아여행이나 네멋대로 해라나 거울은 누구나 사랑하는 영화이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살인의 낙인>을 좋아해' 혹은 '이탈리아 감독은 단연 까룰로스 베네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하하 친구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것. 그런 걸 정성일 평론가는 취향의 명단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영화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막 영화얘기 하다가, '그런데 혹시 <수라>를 보셨나요?' 라고 물었을 때 본 사람이 열명도 안 되었다는 정성일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을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 질투했다.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다른 건 다 기억이 안 나고, <수라>가 개봉하고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이랑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랑 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논쟁의 말미에 오시마 나기사 : "마츠모토, 그렇게 영화를 하면 안된다." 마츠모토 토시오 : "관객을 버려두어라. 그들의 뜻대로"
134분의 영화인데 나는 중간에 좀 달콤하게 잤고, 여기저기 재밌고 엉뚱하고 B급 정서의 대사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는 폭소가 터지더니 간혹 아무도 안 웃을 때 저기 앞쪽에서 몇 명 저기 뒤에서 누군가가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게 나는 더욱 웃겼다. 내가 본 게 영화인 것 같기는 한데 다시 보고싶지는 않다. 영화는 온통 피바다가 되었는데 뜨거운 술 마시는 장면이 많았다.
그리고 너무 이상하게 마지막에 겐고베가 고만을 죽일 때 아주 잠깐 화면이 실사의 느낌이 다르게 났었는데 그게 좀 이상하기도 했다. 별 뜻 없는 장면을 구간반복을 3,4번씩 한다거나 하는 편집과 갑자기 뒤로 확 물러난다거나 하는 카메라는 지금도 너무 참신하기만 하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밤만 나와서 답답하기도 하나 영화에 적응을 하고 나면 의외로 재미있고 빈틈없고 캐릭터들이 일관되게 움직이고 해서 재미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감독은 마치 자살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고 말했다는 것은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킨다.